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가 오랫동안 은폐해 온 아동 학대 스캔들이 2024년 뒤늦게 세상에 드러나며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은 1970~80년대 영국과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던 성공회 평신도 지도자 존 스미스(John smyth)의 연쇄 아동 학대와, 이를 알고도 쉬쉬하며 가해자를 해외로 내보낸 교회의 조직적 은폐를 다룹니다. 2024년 11월, 영국 국교회 수장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전격 사임을 발표했는데, 이는 독립 조사 보고서를 통해 웰비 대주교 본인이 2013년에 스미스의 학대 사실을 보고받고도 당국에 알리지 않은 책임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웰비 대주교는 “이미 경찰이 조사 중인 줄 알았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11년간 늦춰진 정의에 대해 사죄하고 물러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웰비 대주교가 2013년 초 학대 의혹을 파악한 즉시 스미스를 경찰에 신고했다면 이후 수많은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탓에 스미스는 2018년 사망할 때까지 처벌을 피해 갔고, 그 사이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존 스미스는 영국에서 존경받던 변호사 출신 평신도 지도자로, 1970년대부터 영국의 기독교 캠프와 아프리카 짐바브웨, 남아공 등지에서 청소년들을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끔찍한 학대를 자행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는 약 30여 명, 아프리카에서는 80여 명 이상의 소년들에게 신체적·성적 폭력을 가했으며, 피해자 중 일부는 사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251쪽 분량의 독립조사 Makin 보고서는 성공회 지도부가 1982년 이미 스미스의 영국 내 학대 행위를 내부 조사로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교단 밖에 공개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교회 수뇌부는 스미스에게 조용히 영국을 떠날 것을 권고했고, 그는 곧바로 짐바브웨로 옮겨가 그곳 소년들에게 같은 악행을 반복했습니다. 심지어 1992년 짐바브웨의 한 캠프에서 16세 소년 가이드 냐추루가 의문의 익사 사고를 당했을 때 스미스의 책임이 의심되어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수사가 지지부진한 끝에 무혐의로 종결되었습니다. 스미스는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거처를 옮겨 2018년 사망할 때까지 어떠한 법적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일찌감치 경고 신호를 인지하고도 은폐에 급급해 가해자를 해외로 도피시킨 결과, 그의 범죄 행각은 대륙을 넘나들며 40년 가까이 이어졌던 것입니다.
스미스의 학대 행각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2017년 영국 채널4 방송의 탐사 보도를 통해서였습니다. 그제서야 영국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으나, 스미스는 조사받기 직전에 사망하여 끝내 사법 정의를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남은 숙제는 교회가 왜 이러한 범죄를 숨기고 묵인했는가 하는 구조적 책임 문제였습니다. 2022년 영국 정부의 독립적인 아동성학대 조사위원회(IICSA) 보고서는 영국 성공회 내에 만연한 성직자에 대한 맹목적 복종 문화, 그리고 피해자보다는 가해 성직자를 두둔하는 조직 문화가 교회를 “가해자들이 숨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번 스미스 사건에서도 바로 그러한 요인들이 작용했습니다. 교회 지도부는 성직자의 체면과 교단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문제를 덮었고, 그 결과 더 많은 어린 양들이 상처 입는 걸 방치했습니다. 한 성공회 주교는 웰비 대주교의 사임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하면서, 교회 최고 지도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에 “교회 내 책임 부재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웰비 본인도 사임 발표문에서 “2013년부터 2024년까지 오랜 기간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재차 안긴 데 대해 개인적, 제도적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습니다.
웰비 대주교의 사임은 전 세계 85개국, 8천5백만 신자가 속한 세계 성공회 공동체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중도적 성향의 조정자로서 나이지리아 등의 분쟁 해결에도 힘썼지만, 교회 내 여성 성직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을 봉합하지 못해 왔습니다. 특히 일부 보수 성향 교구들은 웰비의 지도력에 의문을 제기해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터져 나온 스미스 사건 은폐 스캔들과 지도부의 책임 회피는 웰비의 도덕적 권위를 크게 실추시켰습니다. 영국 교계와 여론은 “더 이상 피해자의 절규에 귀닫고 가해자를 비호하는 교회 문화는 용납될 수 없다”는 준엄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스미스의 피해자들은 웰비의 사임 소식에 “이제서야 교회가 변화할 기회를 얻었다”며 교회 전체의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실제로 웰비의 퇴진 이후 영국 성공회는 피해자 지원과 재발 방지 대책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개혁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에 귀 기울이지 않고 권력 남용에 눈감아 온 교회 문화”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어, 이를 쇄신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은 가톨릭 교회의 문제만큼이나 개신교 내부에도 심각한 아동 보호의 허점과 권위주의적 폐쇄성이 존재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교단의 명예를 이유로 사건을 은폐하거나, 가해자를 다른 지역으로 전출시켜 문제를 덮는 행태는 비단 한 교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앞서 살핀 가톨릭 교회의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권위에 대한 과도한 숭배와 불투명한 의사소통 구조가 피해자의 희생을 키운 것입니다. 이와 함께, 현대적 인권 이슈에 대한 교회의 배타적 태도도 여전히 진행형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웰비 사임의 배경에도 교회가 시대 변화에 둔감하고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이러한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신뢰 회복은 요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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