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충격적인 폭동 현장에는 기이한 이질감이 감돌았습니다. 성조기 옆에 십자가 깃발이 나부꼈고, 일부 폭도들은 “Jesus Saves(예수께서 구원하신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습니다. 한편에선 나무로 만든 커다란 십자가에 기대어 무릎 꿇고 기도하는 무리도 눈에 띄었습니다. 심지어 상원 본회의장에 불법 침입한 한 남성이 머리에 뿔 달린 모피모자를 쓴 채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기회를 주사,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수호하고… 이 나라가 우리의 것임을 모든 폭군과 공산주의자들과 세계주의자들에게 알릴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라고 외쳤습니다. 폭도들은 이 기도에 잠시 경건히 침묵하며 동참했습니다.
국회의사당 계단 밖에 세워진 교수대 곁에도 “Jesus Saves” 표지가 걸려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한 침례교 지도자는 이를 보고 “분노로 치를 떨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종교적 구호와 상징이 난무하는 폭력 사태에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경악했습니다. 백인 복음주의자 다수가 트럼프를 지지해왔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신앙의 이름으로 폭력이 정당화되는 장면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실제로 폭동에 가담한 이들 중에는 교회 버스를 대절해 온 보수적 복음주의 신자들도 있었고, 현장에 가지 않은 같은 교회 신자들 중에도 폭도들을 “애국자”라 부르며 그 행동을 묵인하거나 응원한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1월 6일의 폭력 사태는 단순한 정치적 극단주의를 넘어, 기독교 신앙과 민족주의가 결탁된 결과물임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신앙이 정치폭력을 부추기다
미국 복음주의 진영 일부에서는 오랫동안 애국심과 신앙을 혼동하는 경향, 이른바 “기독교 민족주의”가 뿌리내려 왔습니다. 이는 “미국은 근본적으로 기독교 국가이며, 참된 미국인은 기독교 신자여야 한다”는 배타적 이념으로, 신앙을 정치적 권력과 결부짓는 특징이 있습니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패배 직후 이러한 경향은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 트럼프와 지지자들은 선거 부정 음모론을 퍼뜨렸고, 많은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20년 말 60%에 달하는 백인 복음주의 신자들이 대선이 도둑맞았으며 트럼프가 사실상 승리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은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의 승리가 사탄의 세력에 가로막혔다”는 종말론적 서사와 결합되어, 결과에 불복하고라도 행동해야 한다는 정서로 번졌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적 폭력을 '성전(聖戰)'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교계 일각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특히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이라는 신학적 개념이 정치 담론에 차용된 점이 두드러집니다. 새로운 사도적 종교개혁(NAR) 계열 등의 일부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2020년 선거 직후부터 노골적으로 “악한 영들이 선거를 훔쳤으며, 성도들은 영적 전쟁에 나서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설파했습니다. 대표적 복음주의 예언가인 랜스 월누(Lance Wallnau)나 신디 제이콥스(Cindy Jacobs) 등은 트럼프의 재선을 가로막는 세력을 악에 빙의된 ‘거짓의 영’으로 규정하고, 이를 쫓아내기 위해 기도와 행동으로 싸울 것을 독려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겉보기엔 추상적인 영성 용어를 쓰고 있지만, 현실 정치에 직접 개입하여 선거 결과를 뒤엎는 물리적 행동까지 정당화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그 정점에 있던 사건이 바로 트럼프 지지 기독교인들의 연합행동인 “여리고 행진(Jericho March)”입니다. 2020년 11월부터 1월 초까지 워싱턴 DC와 각 주도(州都)에서 열린 이 집회들은, 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기 전 성 주위를 7일간 돌며 나팔을 분 사건에 착안해 조직되었습니다. 기도자들은 워싱턴 거리에서 나팔[쇼파르]을 불고 찬송가를 부르며 “부정 선거라는 거짓의 성벽이 무너질 것”을 외쳤습니다. “여리고는 거짓 신과 부패의 성읍이었고, 하나님이 무너뜨리셨다. 지금 미국의 부정권력도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신다”는 구호 아래 열린 이 행진에는 수천 명의 기독교인이 동참했고, 복음주의뿐 아니라 가톨릭 보수신자까지 아울렀습니다. 문제는 이 성경적 은유가 “결국 벽을 무너뜨리라”는 물리적 행동을 암묵적으로 시사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여리고 행진에 참가했던 많은 이들이 1월 6일 다시 워싱턴에 모여 의사당으로 행진했고, 급기야는 정말로 “권력의 성벽”을 부수고 난입하는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한 보고서는 “여리고 행진은 사람들에게 권력의 심장부로 행진하는 법을 익히게 했고, 그 성경적 암시 때문에 폭력이 암묵적 목표가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1월 6일 폭도들 중 다수가 앞선 몇 주간 워싱턴에서 열린 기도 집회와 시위에 꾸준히 참여해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컨대, 복음주의 진영 내 극단적 민족주의 흐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세속 정부에 대한 물리적 저항도 불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까지 비화되었습니다. 정치 지도자 트럼프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많은 신자들은 믿음과 애국을 혼동한 나머지 자신들의 폭력적 행동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이라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전통적으로 존경받는 복음주의 거물들 중에서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언행을 한 이들이 있습니다. 유명 전도자 프랭클린 그래함(故 빌리 그래함 목사의 아들)은 트럼프 임기 내내 그의 열렬한 지지자였는데, 선거 후에도 트럼프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공개 지지했습니다. 그는 바이든 당선이 확정된 후에도 “트럼프가 주장하는 진실을 지지한다”며 결과 승복을 거부했고, 심지어 1월 6일 이후 트럼프에게 등을 돌린 공화당 의원 10명을 “예수를 배신한 가룟 유다”에 비유해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이끄는 기독교 자선단체 사마리탄 퍼스와 부친의 이름을 딴 전도협회의 이사들 16,000여 명은 이러한 행보를 규탄하며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청원까지 냈지만, 그래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트럼프 편을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 복음주의 진영의 대표적 인물조차 선거 불복과 폭동 분위기를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또 다른 저명인사로 기독교 라디오 진행자이자 작가인 에릭 메택사스(Eric Metaxas)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2020년 12월 워싱턴에서 열린 기도 집회를 사회보던 중 전화 연결된 트럼프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싸움에서 저는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건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메택사스의 이러한 발언은 복음주의 신자들에게 “이제 신앙을 위해 싸울 때”라는 극단적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예수와 복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트럼프를 위해 ‘순교’할 각오로 싸우라는 위험천만한 선동이었고, 실제로 그의 말을 들은 열성 신도들은 이를 현실 행동 지침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메택사스처럼 매체 영향력이 큰 인물이 공개적으로 폭력을 감수한 투쟁을 신앙적 의무처럼 미화한 것은, 교계 내부 극단화를 부추긴 하나의 사례입니다.
이 밖에도 일군의 복음주의 목회자들이 교회 예배 시간에 노골적으로 정치적 주장을 펼치며 “우리 편이 나라를 되찾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식의 설교를 했다는 증언이 많습니다. 반면, 많은 온건파 목회자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제때 제동을 걸지 못했습니다. 남침례회(SBC)의 러셀 무어 등 일부 인사들은 교회 내 퍼지는 음모론과 폭력미화에 “미친 짓에 목소리를 낼 때”라고 경고했지만, 상당수 교계 지도자들은 “설마 진지하게 그러겠느냐”며 문제의 심각성을 애써 외면하거나 침묵했습니다. 그러나 1월 6일 사태는 이러한 침묵과 묵인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폭동 이후 뒤늦게 여러 교단 지도자들이 “교회가陰謀論(음모론)에 단호히 선을 긋지 못한 잘못을 참회한다”는 반성과 성명을 내야 했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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